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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작품전

예술대전

김기만(金基萬, 1929년 5월 9일 ~ 2004년 12월 26일)


북한의 조선화 4대(정창모, 선우영, 김상직)가 중 한 사람으로 공훈화가 칭호를 받았다. 서울 출생(경성부 종로방 운니정; 현 서울특별시 종로구 운니동)으로 운보 김기창(1913∼2001) 화백의 셋째 동생이다. 4살때 어머니를 여읜 후 김기창 화백의 그림 그리는 것을 보면서 화가로의 꿈을 키움. 교동보통공립학교(1943년), 경기공립고등중학교(1949년)를 졸업했고, 이순종, 길진섭, 리해성 에게서 그림 지도를 받았다. 일제강점기였던 1944년 동양화가로 화단에 등단.

서울 시립미술연구소 연구생이던 1950년 6월 6·25전쟁 발발. 1951년 1월 인민군에 강제 징집되어 월북. 이산가족이 됨. 1956년 평양미술대학교 조선화미술학과에 입학(당시 28세). 1960년 평양미술대학교 졸업. 학사학위 취득. 1970년 3월부터 1972년 9월까지는 자신의 모교 평양미술대학교의 교수 역임.

2000년 12월 이산가족 상봉단의 일원으로 남쪽을 방문, 당시 삼성의료원에 입원해 있던 형 김기창 화백(당시 88세)과 병실에서 상봉.

김 화백은 민속화, 특히 매화 국화 게 새우 등을 소재로 한 그림을 자주 그림.

2004년 6월 <북녘의 4대 화가전>

2004년 10월 <북녘작가 미술전>

2005년 3월 <북한 최고 화가 고 김기만 화백 유작 특별전> 등 평불협 주관 전시회 개최

오영성(吳永成 ; 1964년 4월 15일 ~ )


북한의 공훈예술가. 화가. 평양시 중구역에서 출생. 1986년 평양미술대학 조선화학부 졸업후 만수대 창작사 조선화창작단 창작가. 1997년 공훈예술가

모두가 인정하는 북한의 화조화 대가. 일필로 단번에 그려내는 덧칠이 가능하지 않은 화법으로 천부적인 재능과 최고 수준의 필력을 가진 화가.

어린시절부터 천부적 재능을 나타내 세계적으로 알려짐. 일본, 미국, 중국, 러시아 등 여러나라들에 그의 화조화 작품들이 널리 소개되어 대단한 인기를 끌고 있음. 평불협에서는 그의 작품을 다수 소장하여 전시함

효원(曉園) 정창모(鄭昌謨, 1931년 12월 16일 ~ 2010년 7월 25일)


북한의 조선화 4대(정창모, 선우영, 김상직)가 중 한 사람. 전라북도 전주에서 3남 2녀 중 차남으로 출생. 일제강점기인 1942년 동양화가로 등단. 1944년 수묵화가로 입문. 광복 후 동양화가 겸 수묵화가로 활약. 1950년 6·25 한국 전쟁발발로 인민군 사병으로 강제 징집. 월북.

1959년 평양미술대학교 조선화미술학과에 입학(당시 29세), 1963년 평양미술대학교 졸업. 학사 학위를 취득(당시 33세). 이후 조선화가로 활동. 1971년 3월부터 1972년 9월까지 평양미술대학교의 교수역임.

조선미술가동맹 현역미술가로 창작활동 본격시작. 풍경화와 화조화를 주로 그렸으며, 밑그림 없이 한 번에 그려내는 몰골법의 대가.

1965년부터 조선 시대 회화, 특히 오원의 몰골에서의 붓 다루는 기술, 색채 형상 방법 등에 대해 일관 리석호에게서 체계적인 지도를 받음. 1975년에 이르러 조선화 분야에서 확고한 위치에 확보. 만수대창작사 조선화창작단의 풍경화실 실장이 됨.

전통 화재인 매화, 대나무, 국화를 담은 작품 및 화조화와 정물화 그리고 특유의 필법들로 재현한 서정성 짙은 풍경화를 많이 그림. 그의 특징으로는 붓을 부드럽게 스치듯 밀거나 끌며 거꾸로 움직여 변화무쌍한 자태를 드러내는 선묘, 결구를 찍으며 붓 자국을 낸 힘찬 터치는 그의 몰골 그림에서 힘과 기백, 약동성을 더함

2000년 8월 13일, 서울에 왔던 이산가족 방문단의 일원으로 와서 남동생 등 가족을 상봉.

2010년 7월 25일에 지병으로 작고한사실이 북한 매체에 보도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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