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법회

행복선원

우리는 모두가 부처입니다.

평불협
2024-01-23
조회수 92

지금까지 사성제(四聖諦)와 팔정도(八正道). 그리고 육바라밀(六波羅密)에 대해 공부했습니다. 팔고(八苦)도 공부했지요. 공

(空)과 중도(中島)에 관한 것도 공부했습니다. 반야심경에서 말하는 불생불멸(不生不滅) 불구부정(不垢不淨) 不增不感(부증

불감)이 무엇을 뜻하는지도 말씀드렸습니다. 나지도 않고 죽지도 않으며, 더럽혀지지도 않고 깨끗해지지도 않으며, 늘지도 않고 

줄어들지도 않는다고 하니 육신을 가지고 삼차원세계에서 살아가는 우리로서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먹고 마시고 활동하며 생활을 이어나가야 하는 중생인 인간이 “태어나고 죽으며, 더럽고 깨끗한 것을 분별하고, 모든 것이 늘어나

기도 하고 줄어들기도 한다는 것을 알고 분별한다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그러나 깨달음의 안목으로는 이러한 구별이 없으며 절

대 진리의 세계인 법계에서는 모든 사량분별이 사라진다고 합니다. 이러한 경지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중도(中道)를 알아야 한다

고 했습니다. 중도를 중관(中觀)이라고도 한다는 것도 여러분들은 이미 알고 계시리라 생각합니다. 유교적으로 말하면 중용(中

庸)이 이것과 가깝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공(空)과 다르지 않지요. 텅 비어있다고는 하는 데 실상은 꽉 차 있는 것 같은 상

태. 이것을 달리 말하면 진공묘유(眞空妙有)라고 했습니다. 공이 별도로 존재하는 절대적인 실체나 현상이 아니라 보든 것들이 

존재할 수 있는 연기(緣起)가 서로 엮여있는 것을 일컫는다고 할수도 있을것입니다.

용수보살(龍樹菩薩)의 화엄경 약찬게(略纂偈)는 삼신불(三身佛)의 명호부터 시작됩니다. 나무화장세계해(南無華藏世界海) 

비로자나진법신(毘盧遮那眞法身) 현재설법노사나(現在說法盧舍那) 석가모니제여래(釋迦牟尼諸如來)로 시작되지요. 연꽃

으로 장엄된 화엄세계의 바다에 비로자나 참된 법신불과, 현재의 법을 설하시는 노사나 부처님과 석가모니를 위시한 모든 부처님

들을 찬탄하는 것으로 시작됩니다. 비로자나불로 불려지는 법신불은 진리 자체로서 항상 밝게 빛나고 청정하기 때문에 청정법신

이라고 합니다. 진리(法:dharma, 또는 담마)를 그대로 드러낸 우주, 또는 깨달음의 경지에 도달한 진아(眞我:참된 나의 모습

이 “법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보신불은 중생을 위해 원을 세우고 오랜 수행을 통해 무궁무진한 공덕을 갖춘 진리의 몸을 이룬 부처입니다. 법신은 존재만 할 뿐 

우리에게 나타나지 않지만, 법신은 보신을 통해서만 나타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보신불이라고 하는 것이지요. 보신인 노사나불을

통해서 부처님의 진리가 설해져서 중생들은 부처님의 법인 다르마(달마)을 알고 이해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일체설법 노사

나”라고 하는 것이 바로 이런 뜻입니다.

그리고 사람의 몸으로 나타나는 것을 화신이라고 하고 사람의 몸을 가지고 나타난 부처님이 화신불입니다. 석가모니 부처님은 중

생의 몸으로 태어난 부처님입니다. 사람의 몸으로 나투신 화신불입니다. 응신불이라고도 하지요. 석가모니 이전에 출현했던 모

든 부처님들과 장차 도솔천에서 내려와 화림원의 용화수 아래에서 성불하여 중생을 구제할 미륵부처님도 화신불입니다.

이 삼신불중 법신인 비로자나불은 진리의 당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이 진리의 당체인 법신불은 계시지 않은 곳이 없으며 누구에

게나 평등하게 보신으로 나투십니다. 중생이 원하는 모습으로 나투시어 원을 들어 주시는 것을 보살이라고도 하지요. 보살은 법

신불과 하나되어 부처가 되는 것을 접어두고 중생교화를 위해 중생의 근기와 원에 따라 나투는 보신으로 나투신 부처님인 것이지요.

우리 모두에게는 법신이 항상 함께 계십니다. 우리가 그것을 모르기 때문에 사량분별과 오욕칠정에 끄달려 살아갑니다. 이런 것

을 지켜볼 수밖에 번신은 얼마나 안타깝겠습니까? 아마도 자식의 그릇된 행동을 지켜볼 수밖에 없는 부모의 마음, 어머니의 마음

과도 같을 것입니다. 흔히 관세음보살을 어머니와 같다고 하지 않습니까?. 부처와 중생의 차이는 법신을 모두가 가지고 있지만 자

신 속에 법신이 있다는 것을 모르기 때문에 중생인 것이고, 그것을 찾게 가르쳐주고 일러주는 것이 보신이며, 우리가 중생인 것을 

깨달아 알고 정진수행을 통해 자신속의 법신과 하나가 되면 바로 부처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속에 법신이 있다는 것을 모르는 것은 무명(無明)에 싸여있기 때문입니다. 그 무명을 걷어내는 것이 곧 수행이지요. 그렇기 

때문에 우리 모두가 부처이고 중생인 것입니다. 부처가 중생이고 중생이 곧 부처인 것 이지요. 반야심경의 색불이공(色不異空) 

공불이색(空不異色) 색증시공(色卽是空) 공즉시색(空卽是色)을 달리 표현하면 진공묘유(眞空妙有)가 되고, 불생불멸(不生

不滅) 불구부정(不垢不淨) 부증불감(不增不減)은 곧 법신을 말하는 것이며, 달리 표현하면 무아(無我), 진아(眞我), 본지붕광

(本地風光) 등등 여러 가지로 말할 수 있습니다, 법신의 경지에서는 사량분별도 끊어지며 우리 모두가 하나가 됩니다. 이 경지에 

도달하기 위해 우리 모두 함께 열심히 정진수행합시다.


나의 스승이신 석가모니부처님께 귀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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